대종교와 기독교
서울대 명예교수 손봉호씨가 개신교의 타락을 맹렬히 비판한다. 늦어도 한참 늦은 지금에야 자성하는 개신교 지성인이 나타났다. 그러나 개신교는 이미 일제의 관제종교로 패망 대한제국에 정착하면서부터 타락은 예정돼 있었다. 서울과 평양에 대형교회를 세워준 주체가 일본기독교연합과 참의원의 후원으로 성사되었다. 또한 선교사들은 민족과 정치에 간섭하지 않는 조건으로 이 땅에서 노예종교화에 앞장선다. 민족과 독립의식이 존재할 수 없었다.
일제가 패망 후 미군정 하지가 개신교 근본주의자이고 친개신교 정책을 펼친다. 이승만과 하지가 친일부역자들을 등용한다. 친일세력은 하지와 이승만의 개신교에 과거전력을 숨기려 신자가 된다. 419혁명이 친일 박정희에 의해 좌절되면서 친일세력은 다시 한번 한숨을 돌리고 권력과 부와 헤게모니를 조장한다. 1026에 의해 박정희가 암살된다. 전범인 일본 수상 기시와 맥이 닿았던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도 쿠데타 정권을 일본의 협조아래 유지한다.
친일세력은 이 땅에서 단죄되지 않고 그 처벌의 시기를 또 놓친다. 기독교는 군사독재를 옹호하고 찬양한다. 친일세력의 본거지기 때문이다. 친일을 사죄한 적이 없는 개신교다. 근면하고 영리한 국민이 경제성장을 만든다. 더더욱 친일세력의 단죄는 요원해지고 오히려 기세가 등등해지고 철면피가 되어간다. 역사와 국민을 농락하고 있음이다.
명동촌 교회 출신 중 한 사람인 문익환 목사 같은 대종교를 바탕으로 개신교를 신앙하는 양심 있는 지성은 저항한다. 그에게 친일 개신교는 참을 수 없는 반민족적 종교다. 단군을 시조로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진 대종교는 어떤 종교보다도 민족적인 종교다. 박은식과 신채호는 만주벌판 조선과 고구려, 고려의 유적유물을 답사하면서 조선사를 편찬한다. 그들도 대종교의 신도이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려 노력한다.
만주 항일 무장 독립군의 정신적 바탕은 단군의 대종교였다. 김좌진, 홍범도, 지청천 장군들은 모두 대종교를 숭앙하는 민족주의자였다. 박정희는 그들을 소탕하는 일본장교였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주시경, 지석영, 이병기, 안재홍, 정인보, 최현배 등 한글(주시경)이라 최초로 명명하고 한글로 민족의식과 독립의식을 계몽하던 지성인들이 일제에 의해 해체된다. ‘단군성가’라는 노래가사가 책상에 놓여있다는 이유로, 대종교 신도들이란 이유로
일제는 대종교를 종교로 인정하지 않고 항일 무장단체로 규정한다. 이미 만주 전역 대한제국 유민들은 대종교로 뭉치고 있었다. 일본군의 토벌대는 무자비하게 유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을사오적을 암살하기 위해 암살단을 조직했던 나인영(나철)이 대종교의 맥을 살렸고 대종교 지도자이자 부산 대지주였던 안희재는만주에 ‘발해농장’을 옛 발해의 수도에 설립해 대종교와 독립군을 양성한다. 하지만 일제는 1942년 “임오십현”이라 불리는 대종교를 대대적으로 뿌리뽑는 작전을 벌인다. 대종교의 대다수 지도자가 만주 역하감옥에서 사망한다. 대종교의 멸절위기에 놓인다.
기미독립선언문보다 일년전인 1918년 무오년에 “무오독립선언문”을 공표한다. 발기인 39인중 25명이 대종교인이다. 강단사학은 이를 말하지 않는다. 친일 하던 자신의 스승과 자신들이 설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친일하던 기독교는 일제에 붙고, 미군정에 붙고, 독재에 붙어 권력과 부를 친일세력과 나눠 가진다. 무소불위의 기득권으로 자리잡는다. 하지만 진정으로 민족정신 함양과 독립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날렸던 대종교는 무참하게 일제에 의해 와해됐다. 그리고 친일세력과 기독교는 이렇게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기만하며 기강을 흐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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