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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 공원 2025.04.29
- 봄 꽃들 2025.04.28
- 수원 행궁 2025.04.27 1
- 하늘 공원 2025.04.27
- 동네 일상 2025.04.27
- 소향론(수정본) 2022.05.11
- 나의 시간, 너의 시간 2022.03.29
- 반드시 인연은 찢어진다! 2022.01.11
- 국뽕과 매국 2021.12.10
- 지나니 허망한 모두 2021.12.08
예술 공원
봄 꽃들
수원 행궁
하늘 공원
동네 일상
소향론(수정본)
소향이라는 가수의 이름을 처음 들었던 때가 아마도 2012년도인가 ‘불후의 명곡’이란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본 게 전부였다. 지나가면서 들었다 할 정도로 당시엔 그리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여유가 없었을 시기여서 그랬거니 한다. 아마도 케이팝 아이돌 뉴스를 생산하던 한류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젊은 층을 대상으로 전문가는 아니지만 나름으로 열심히 리뷰를 작성하던 시기인지라 대중가요에 관한 관심이 별로였던 시기여서도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기사에서 그녀의 피부가 까무잡잡해 혼혈이라는 등의 루머를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냥 흘려 지나치는 정도 그게 다였다. 그녀를 아는 거라곤 말이다. 예능 프로를 거의 안 보는 타입이라 더더욱 모르는 게 더 당연한지 모르겠다. 그리고 근 10년이 흘러 유튜브에서 굴러다니는 리액션 영상을 알고리즘으로 우연히 소향의 “Bridge over trouble water “커버 곡을 듣게 됐다. 그리고 아주 열심히 그녀의 공연 영상을 갈고리로 긁어대듯 찾아다니며 열람(?)하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이 대단한 가수를 여태껏 모르고 있었지?“
나이가 쉰을 넘으니 눈물샘이 자동으로 풀리는지 모르겠지만, 소향의 노래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접하면서 감정 방어가 솔직히 어려웠다. 나보다 10여 년 정도 어린 여가수인데도 마냥 경이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그녀를 거침없이 대형 가수의 반열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나의 판단은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전문 음악 리뷰어이자 유튜버들도 리액션에서 똑같은 식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글로벌 가수 중 스타급 레벨 6인에 올려져 있다는 자료도 보게 됐다.
”대체 불가한 디바” - 야직(Yazik),폴란드계 뮤지션이자 보이스 코치
그녀의 아름다운 흉성이나 두성 그리고 완벽한 믹스, 게다가 4옥타브를 넘나들며, 부드러운 기교, 섬세한 바이브레이션 등, 소향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은 위키트리나 인물 사전에 자세한 설명이 있기에 중복해서 기술할 필요는 없겠다. 동영상을 찾아보는 내내 감탄사와 더불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천재성과 노력의 결과가 눈에 보일 정도다.
그런 모든 수식조차 아깝지 않은 경이로운 가수이지만, 인지도는 생각보다 턱없이 낮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 듯 보인다. 첫째, 가수의 출발선이 CCM 즉 가스펠(Gospel) 싱어로 출발했기 때문에 대중적인 노출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건강상 문제도 있거니와 그녀 스스로 유명해지는 게 부담스러웠다는 인터뷰 내용을 보면, 개인적으로 공감되기도 하고 때론 아쉬운 점도 있다. 물론 20대에 감당하기 힘든 암 수술을 받아 정신적인 충격과 후유증을 겪었고, 극복 과정에서 종교적 기적이라 믿어서 더더욱 기독교 사역 가수에 매진했을 수도 있었다. 그녀가 기독교 복음 사역을 하지 않고 대형 가수로 성장했었다면, 아마도 돈과 명예는 이미 거머쥐었을 테고 휴식과 건강은 여유롭게 관리되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가정을 하자면 말이다. 그런데 소향에게 이런 가정을 하는 명분이 있다. 그녀는 거의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국보급이어서 그렇다. 피겨의 김연아, 축구의 손흥민, 그리고 글로벌 인기를 쉽게 얻을 수 있는 대형 가수로서의 소향(?).
소향은 79년생이다. 그녀는 90년대 대중가요가 급격하게 진화하고 탈바꿈하면서 거대한 한류로 물결치던 그 시기, 첫 세대(서태지,SES,HOT,핑클) 주자였을 수도 있을 그 당시 그 자리에 없었다. 충실한 가스펠 싱어로 기독교 신자로, 그리고 한국선 거의 드물다시피 하게 조혼으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었다. 소향 스스로 지극히 평범한 개인으로 겸손하게 살고자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면 재능을 펼칠 기회를 놓친다거나 흘려보낸 시간을 돌이키며 늘 사람은 안타까움이 남는 법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녀만의 오리지널(원곡) 곡이 거의 없다는 현실이다. 뭐 그것도 신앙심에 입각한 그녀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재능을 두고 기독교인들은 신이 준 축복이라 말들을 하겠지만, 남들과 비교해 불공평할 정도의 재능을 타고난 그녀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고 혹은 인정받을 수 있는 ’’예술의 궁극적 소통‘이란 측면에선 아쉽다. 종교적 가치관이 강한 그녀에게 아마도 대중가요는 접근하기엔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유명해지기 싫어서가 아니라 종교적 방어기제가 아닌가 싶다.
모든 의미를 종교적인 방식으로 해석하려 하는 것도 자기최면이고 도그마다. 자신의 재능을 종교에 한정 지으려 했지만, 본능적이고도 예술적인 끼를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대중적 인기 혹은 존재감)의 분출은 결국 예능(불후의 명곡) 프로그램을 통한 것이었다. 그리고 성공적이었다. 그녀가 커버한 곡들은 오리지널 곡을 뛰어넘는 곡들로 남아있다. 그런데 정작 그녀를 상징할 곡은 없다. 최근 그녀의 싱글 ’STAY’는 자신의 곡임에도 불구하고 유튜브 조회 수 2십만도 안된다. 여러 국내외 전문가들의 평가와는 달리 그녀의 인기는 극히 한정돼 있다는 뜻이다.
분명 소향을 모델로 삼아 활동하는 필리핀 가수 모리셋 아몬조차 1억이 넘는 조회 수를 가진 동영상이 있다. 막 귀라도 소향과 모리셋의 실력 차는 금방 알아낼 수 있을 정도인데 슬프게도 우리의 소향은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태어나 그것도 천재성이 돋보이는데도 홍보가 안 돼 그녀의 대부분 유튜브 커버 곡들은 천만 넘는 게 없다. 기껏해야 900만 정도에서 더디게 조회 수가 늘어난다. 몇 개월 지나면 천만 조회 수는 나올 것이다. 이런 상황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게 맞을까? 어찌 보면 내 욕심일 수 있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6월(2021년) 현재 40억 조회 수이고 보통 방탄소년단이나 블랙 핑크 같은 경우 10억에 가까운 조회 수를 가진 뮤직비디오가 다수다. 비교적 해외에서도 팬층이 있는 케이팝 가수들의 조회 수 또한 최소 몇천만에서 억 단위 조회 수를 기록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소향의 뮤직비디오는 그냥 초라하다. 이는 저평가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인 대부분이 모른다는 것과 다름없다. 기독교인들 빼곤 더더욱 모른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태어나 살아가는 99%는 재능 없이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 어려운 재능을 갖고 태어나게 만든 부모님에 대한 감사보다 자신의 종교에 대고 감사하는 일도 이해하지만, 같은 한국인으로서 국뽕 개념으로 바라보는 소향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재능을 타고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여성으로 따지니 그냥 안타깝고 아쉬울 수밖에….
나는 그녀가 좀 더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으면 한다. 투병하며 새삼 느낀 거지만 삶이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그리고 길지도 않을뿐더러 언제 이승을 등질지도 모른다. 난 그녀가 아픈 와중에도 그 창백하고 병색이 짙은 얼굴로 사력을 다해가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 그리고 모든 듣는 이를 완벽하게 압도하는 그녀의 열창에 경외심마저 든다. 일반 종교의 신은 보이지 않지만, 소향은 보이는 그 자체로서 내 종교로는 완벽하다. 그녀가 열정적으로 부르는 노래에 전율을 느끼고 살아있다는 행복감에 젖는다. 그리고 웅장한 국뽕까지 덤으로 차오른다. 세상에 이만한 종교가 어딨을까?
종교는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든다. 예술인에게 이는 창의적인 재능에 스스로 한계를 긋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그녀가 이선희의 ‘나 항상 그대를“ 열창하고 난 뒤 그 순수한 웃음에 선함을 느끼며 감동하고, 임재범의 "그대는 어디에"를 부른 뒤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인생의 고뇌를 순식간에 스쳐 가게 한다. 그리고 그녀는 종교의 것만이 아닌 우리 민족 재능의 정수 중 하나라 생각한다. 그녀의 편곡엔 가끔 엔야(Enya)가 들린다. 그런데 이런 뉴에이지 음악은 골수 기독인들에겐 악마의 음악이라 불린다. 아이러니다.
대부분의 커버 음악을 가스펠 화하려는 편곡 성향이라든가 찬양하는 듯한 찬송을 부르는 스타일에 의외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다 그런 거다. 세가 줄어드는 기독교다 보니 그런 현상은 더 그렇다. 오히려 엔야보다 더 뛰어난 가창력과 해석력을 지닌 채 재능이 종교에 묻히는 게 아닌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녀의 선택은 오로지 그녀의 결정에 따라 의미가 되는 것이겠지만. 엔야 이상의 한국적 신비주의 거장이 되든가 잠깐 재능만 뽐내고 종교사업의 사역자로 살다 지든가 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나이 또한 불혹을 넘었다. 최근 활동도 보면 자신의 음악세계는 없이 불후의 명곡에 등장해 여전히 다른 가수의 곡을 듀엣으로 부르는 장면을 보는데, 유튜브 섬네일 보곤 그냥 기대조차 하지 않고 있다.
커버나 모창 가수로 사라지기엔 너무 아까워서 한마디 하는 것으로 하자. 그녀의 완벽한 팝송 커버를 들어도 그 좋은 영어 발음이 헛바람처럼 귓가에 스쳐 갈 뿐이다.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을 보면 마치 ”나 여기 있소“하고 하소연하는 듯 하다. 그녀의 절대고독이 아우성치는 것처럼 들린다. 나에겐 그렇게 들린다. 그녀도 더 나이들면 점점 더 공허감에 시달릴 것이다. 그녀의 재능이 그녀를 못마땅하게 생각할 것이니.
나의 시간, 너의 시간
누구나 자신만의 세월은 간다. 나의 시간은 오로지 나만이 향유하는 시간이면서 언젠간 끝을 내야 하는 시간인 거지 자신은 자신이 잘 안다고 자신해도 결코 자신을 모르고 산다. 자신의 뜻대로 살다 가는 사람이 그 얼마나 될까?
온통 홀로 독자적으로 자란 이는 없다. 나를 이루는 많은 혈통과 관습 그리고 환경이 나를 만들어 낸다. 그렇지 않은 이가 있다면 그는 예수를 능가하는 이가 됐을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면 말이다. 하늘 아래 독창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다양한 타자가 모여 자아가 된 것이지.
온갖 존재감을 드러내려 많은 군상들이 오늘도 내일도 내가 없는 그 먼 미래에도 자신이 가진 캐릭터에 맞게 살 것이다. 아니라 해도 종족번식과 관련된 호르몬이 육체를 지배하고 정신을 제어하기에 우리 인간의 이성은 믿을 수 없게 된다.
종족을 번식하지 않는데, 더 살 필요가 없을 것이고 삶을 유지할 여러 생명유지 활동도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호르몬은 아주 강력하다. 인간이 추구하는 그 모든 것에 우선한다. 결국 그 하나로 세상이 재밌다거나 비극이거나 한 지경에 이르는 것일 게다.
비극은 단 한 가지 목적성에서 출발한다. 다른 곁가지를 끌어다 에둘러댈 필요 없다. 절대 고상할 수 없다. 척은 할 수 있겠지만, 인간 존재는 그냥 비참하다. 행복, 슬픔, 기쁨 그런 소소한 감정들은 성에 관련된 보조장치에 불과하다. 그걸 어떻게 풀고 극복하느냐가 인생인 거다.
노년은 뭘까? 본능적으로 이 꼴들을 유지하기 위한 꼰대 역할을 맡은 시기에 불과한것.
반드시 인연은 찢어진다!
어떠한 삶을 살았건 우리의 인연은 이승까지다. 준엄한 죽음의 법칙 앞에선 그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사랑과 눈물은 다 한 때의 일이며, 기억은 무뎌지고 점점 사라지면서 우린 이별을 준비하는 시기를 맞이한다. 섭리를 이해하기까지 과정은 하룻밤 자고난 후 갑자기 깨닫는 것과 같아 무엇에 속는 일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승에서의 온갖 삶의 모습은 의지와 상관없는 무대이자 배역에 지나지 않는다. 영겁의 시간을 돌고 돌다보면 공평한 균형을 지향한다. 한쪽에 치우치게끔 느껴지는 건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빛이되고 어둠이 되는 일이 반복된다.
이는 해탈 혹은 내세 관념으로 벗어날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주가 그렇듯 모든 현상이 그걸 따르는 것 뿐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모두다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진리!
이 어처구니 없는 세상이 돌아가는 이유는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리라. 아니 두려워하게 만드는 목적을 에피소드로 꾸미려는 지구상의 음모임이 틀림없다. 계급, 계층, 불공평 그런 것을 유지하기 위해 죽음은 두려운 것이라 말해야 한다.
죽음이 다른 모습을 위한 통과의례라면 아마도 이 세상은 좀 더 아름다운 모습을 지향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틀려먹었다. 어느 누구도 이 유치한 장난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냥 "죽지 않기 위해 여러 모습으로 살아간다"
죽음이 여기저기에 도사리고 있는데 말이다.
국뽕과 매국
우리에게 일본이란 나라는 과연 어떤 위치에 있는 나라일까?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대화"(E.H.carr)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신채호)
일본은 역사적으로 한민족에게 일방적인 가해자였고 배은망덕의 표상이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근대화를 이루려 서구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우편국, 철도, 발전소, 가로등 신설 등등 과 군의 근대화 등을 시도했으나 일 제국주의에 막혔다. 데프트-가츠라 조약에 의해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대한제국을 협잡하여 집어삼킨다. 너무 늦은 것이다. 일본은 이미 400년이나 먼저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제일 먼저 한 짓이 임진왜란이었다. 근 7년을 괴롭히면서 조선 강토를 초토화시키고 당시 인구의 1/3인 200만에서 400만이 왜구에게 도륙당했다.
전세를 역전시킨 이순신 장군에 대한 대우는 알다시피 모함과 매도였다. 영웅이기에 백성들의 군주가 될 수 있다는 그 한심한 발상들은 당시 경상도 관료들에게서 나왔다. 하는 짓이 왜구와 똑같다. 나라도 그런 정치음모가 판친다면 나라는 구하겠지만 전란이 끝나면 감당할 수 없기에 전사를 택할지도 모르겠다. 경상도 지역 사람들이 어떻게 이야기하든 지금도 그 지역은 친일에 전혀 꺼리낌이 없고 지역 출신이 아니면 적으로 간주하는 반목과 분열의 핵심지역이 된다.
역사는 반복된다. 우리 민족이 왜구에 반일하는 게 아니라 하도 당해서 DNA에 아주 박혀있다. 반일이 아닌 증일(憎日)이다. 사무친 원한에 더 가깝다는 말이다. 보면 정신 못 차리는 군상들이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아주 나라를 망치려 애를 쓴다. 기질은 정말 못 고치는 것일까? 고구려, 백제를 외세인 당을 끌어들여 멸망시키고, 대륙의 반을 갖다 바치곤 결국 민족 기강을 약화시킨 채 통일을 했다고 자랑질이다. 분열의 중심, 이기적인 정서의 표상이 아닐 수 없다. 임진왜란 당시 경상도 지역이 정말 왜군에게 여성들이 수없이 짓밟혀 왜구들 씨앗을 많이 낳아서 저 지경인지 아니면 왜놈들의 조상이 신라이고 경상도라서 그런가?
대한제국을 강점하기 전 동학군 학살,조선황후 살해, 대마도 병합, 간도 양도부터 시작해 언어 말살 정책, 성씨 개명, 정신대, 강제위안부,강제징집 동원 등등 그리고 남북 분단까지 어디 하나 한민족의 비극에 관여 안 한 부분이 없다. 그리고 또 미국과 이승만 때문에 친일청산을 못해 친일미화는 여전히 당대에도 진행 중이고 더 심화되고 있다. 암세포를 제거하지 못하니 그 세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정상세포를 이기려 하는 형세와 똑같다. 반일 운운하는 미친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역사를 모르면 그 입을 다물라!
일제는 조선의 찬란한 역사를 지우겠다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조선의 모든 역사책을 강제로 수집해 불태우거나 반출했다. 그리고 조선의 역사를 딱 입맛에 맞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 님겼다. 중국 25사만 보더라도 그 어마어마한 고대 역사가 적혀있는데, 우리는 그 역사를 주인인 우리가 가질 수가 없다. 이 역시 친일 사학들이 역사해석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경상도가 선동질을 할 때 사용하는 단어인 "빨갱이"들을 만든 것도 분단의 원흉인 일제 왜구인 것을 친일 근대화론을 주장하며 여전히 배우지 못한 무식한 자세로 자기 민족을 비하하려는 친일 벌레들이 득실거린다는 이야기다.
다시 역사는 반복된다. 질적 양적으로 일본을 추월해가는 요즘도 친일매국노들이 언론과 경제 그리고 종교를 축으로 사악한 매국노 짓을 서슴없이 해대고 있다. 역사는 흘러가고 각 세대들도 인생은 흘러간다. 역사를 모르면서 오로지 적폐들의 친일매국이 근본인 그 악의 축들의 메가폰에 선동되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정신없는 민족은 정신없는 역사를 만든다."
우리 세대 그 앞세대 그 앞 앞 세대 그리고 쫓아오는 후손들, 미래를 생각하면서 너무 착해 당하지만 말고 좀 힘만 생기면 당한 만큼 아니 그 이상 응징 좀 하고 살자. 찌질이처럼 살지 말자. 친일 매국노들은 빠른 시일 내 정리 다시 하고 경상도는 좀 더 정화를 하자. 우리 민족이 잘하는 천년만년 한민족의 운명을 번영과 영속으로 이끌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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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니 허망한 모두
그리 오래 살지도 않았는데, 두뇌는 앞으로 가기는커녕 자꾸 옛 기억들을 꺼내어 추억이 아닌 덧없는 인생 이야기를 하잖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이 40에서 50 사이 갱년기에 접어들어 호르몬이 줄거나 끊기게 될 즈음 육체부터 급격하게 퇴화하기 시작한다. 사실 뇌도 퇴화하면서 서로 아닐 것이라 부정한다. 그런들 100년 정도면 이 세상의 "나"는 이승을 그만 접을 숙명이다. 그 무수한 자아가 인류란 이름으로 바글거리며 아등바등 천차만별로 살아가는 중이겠지.
죽은 뒤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는지 없는지 그거 한 가지만 모르는 사람이 그냥 이런저런 종교적 주장만 받아들인 채 자아란 정신이 정말 다른 몸뚱이를 빌려 다시 윤회하는 것인지, 에어리얼의 말대로 이 지구란 게 우주의 이단아만 가두고 윤회란 고통을 형벌로 받고 있는 건지. 그러고 보면 모르는 게 없는 체하면서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이긴 하다. 여전히 인생은 미궁에서 헤맨다. 선과 악이 있으니, 그로 인해 다양한 계층과 군상들이 만들어지고 당연히 모든 존재가 불공평하고 불평등하게 살아간다. 무엇을 갖고 어떤 계층으로 살건 다들 마리오네트 같다. 그걸 벗어날 수도 없고 말이다.
기본적으로 영겁의 시간을 가진 우주적인 관점에서 사람의 목숨은 정말 찰나에 불과하다. 억울하고, 답답하며 초라한 인생이었어도 다음엔 좀 더 악하게 태어나면 된다. 그게 이 세상을 지배하는 자가 만든 장난의 법칙이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자아는 아무런 힘이 없다. 호르몬은 단지 생존과 번식을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되도록 주입된 듯하다. 육체는 계속 생산되고 생로병사를 거쳐 다시 자아는 탈육을 하고 다시 어떤 과정을 거쳐 다른 자아로 태어나는 그런 것.
그게 아니어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