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념의 바다

 

 

을사5적을 돌아

경술국치를 돌아

친일이 광복을 뒤엎어

독재가 민주를 죽이며

군인은 총칼로 뭐든 되고 하며

조선과 동아는 앞잡이답게

희생을 빨갱이로 만들고

가스통할배를 만들고

지능 낮은 보수를 만들고

복지는 외국인에게

보슬들은 다리를 벌려

영어하는 놈에게 달려든다

사기꾼을 대통령으로

박쥐들을 국회의원으로

아직도 친일이 눈을 부라리며

이젠 주인님이 되어가는

아직도 후궁을 둔 왕을 모시듯

뭔짓을 해도 나랏님 모시듯 하는

그 선배들 덕에 개같은 것들이

되레 큰 소리치는 나라

그깟 정의를 넘어

그깟 신의을 넘어

불의와 배신이 판치는

나를 넘고 넘어

너를 넘고 넘어

우리 모두를 넘고 넘어도

남는 건 오로지

체념이라는

체념의 바다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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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잃고, 사라지며,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기억하는 것보다 더 많아지면 늙어가는 일이겠지. 사랑하는 것과 소중한 것과 지켜야할 것들을 놓아둔 채 갈수록 그 농도가 얕아진다면, 그건 무기력과 무능력에서 오는 절망일 수 있을꺼야...

 

거울에 나타난 지금 이 모습의 나를 보면서 좀 더 아픔과 슬픔이 적었던 그 시절 파란 하늘아래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싶은 애절함도 이젠 가장 현실적인 현재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억눌린 채 기분만 자꾸 가라 앉는다. 멀리 지나간 그 공기와 사람들과 풍경들을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어쩌면 태어났기에 반드시 죽는다는 테제를 겸허히 받아들여서 사는 동안이라도 정의를 위한답시고, 학창시절 순수한 학자적 양심만 고집하며, 뭔가 휴머니즘에 가까이 가려는 그 문학적 노력들이 자본주의적 가치를 애써 무시한 듯 하다. 달려오다보니 상처투성이인 맨발만 남았더라

 

관련없는 모르는 이들의 생사를 모르듯이. 가고오는 것을 모르듯이 안다해도 금방 잊는 일이 바로 사람사는 세상이였지. 내가 가고 너도 가고 모두 가면서 산 사람들은 다시 웃음을 만들기 위해 슬픔을 잊고, 아픔을 딛고 살아간다.

 

여자여서 슬픈 운명이지만, 남자여서도 슬픈 운명이다. 짝을 찾는 일이 중요하지만 생식을 위한 짝과 이해해주는 짝이 다르다는 것을 뒤늦게 안다해도 포기하고 살던지, 헤어지던지 그 두 가지 선택받에 없다. 그러니 생식 끝난 남녀가 방황하며 계속 생식하는 행위만 하다 인생을 다 소비하는 것일게다.

 

적막한 밤, 잠을 자야하는 이들과 잠을 못자는 이들이 있을 터, 밤엔 조용해야 한다는 본능이 있더이다. 저 아프리카의 밤하늘, 유럽의 밤하늘, 아메리카의 밤하늘, 남극의 밤하늘 그 밤들도 별을 따라 다닐 것이다. 달도 있으면 더 좋고...

 

육체는 노화되면서 과거를 불사르는 일을 두뇌에 맡긴다. 소는 여물을 되새김질 하지만 사람은 기억을 되새김질 한다. 그래서인지 사람은 유독 소의 되새김질에 넋을 잃고 바라본다. 사람과 소는 길이 다르지만 같은 운명을 지닌다.

 

자유로운 사유 속에서 세태를 바라보고 갈길을 곰곰히 생각한다. 정신적인 여유는 물질을 비교하지 않을때 생겨난다. 그러나 흔들린다. 책임감때문일 것이다.

 

그래 사람은 정치적인 동물이자, 사회적 동물이라 했던가. 관념의 바다에선 허우적거리지만, 물질의 바다에 빠지면 익사하는 법이다. 그래서인지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자는 물질의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여유를 누린다. 비록 뇌가 비어있어도 말이다.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발상지인 영국의 조용한 시골 마을이 자세히 보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을 비석 하나 달랑 표시한 채 무덤만 남기고 공산주의자의 안식처가 되었다. 그래도 자본주의를 긴장시킨 당대의 이념가는 역사에 길이 남을 이론과 텍스트는 남겼다. 세상이 변하는 것도 모르고 분진이 되고 있음이다.

 

그도 그렇게 잊혀지는데. 필남필녀들은 성씨를 남기고 후손들을 키우다 그들도 역시 분진이 된다. 반복되면서 사람의 굴레를 결코 벗어나지 못하면서 그리 사는 것을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며 바톤을 넘겨주게 된다. 인생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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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6층과 7층 사이 그 중간 바닥과 천정으로 벌어진 20cm 틈으로 비둘기가 분주히 날아다니더니 둥지를 만들어 알을 낳고선 몇마리 새끼들이 알에서 부화한 듯 하다. 사람 인기척이 들리면 비둘기새끼들은 한참을 병아리처럼 삐약거리지도 않고 쥐죽은 듯 가만히 있기도 해서 생존하는 법을 일찌기 본능적으로 알고 대처하는 것 같다. 아니면 어미비둘기가 인기척이 감지되면 신호로 조용하라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벌어진 틈 사이로 비둘기 가족의 둥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창문 밖에서 둥지를 바라보기엔 추락할 염려가 있어 워낙 위험한지라 직접 들여다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작업중 들려오는 비둘기새끼의 울음소리가 이젠 정겹기만 하다. 무언가가 살아서 꿈틀거리거나 살기위해 태어난 어린생명이 낼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순한 소리인 하이톤의 아우성이 어린 아이들의 보채는 소리와도 같아 더더욱 애처롭기만 하다. 이제 내 나이가 그럴 나이인지 모른다.


누군가 이 세상 모든 동물의 새끼들은 귀엽다고 말하는 걸 들은적이 있다. 그걸 동물학자들은 어린새끼들이 일종의 생존하기 위한 방어기제의 연장선이라며  참으로 멋대가리 없는 학자다운 논문형식으로 규정짓는다. 하기사 귀엽지 않으면 기르고 키우는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어린 모든 새끼들은 헌신적으로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의 영향을 받는다. 동물들의 본능은 악한 것이 없으나 인간의 작위적인 시스템은 악한 존재도 만들어낸다. 열악한 환경과 위화감이 조성되고 소외와 낙오된 계층의 아이들은 그런 불만과 차별을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분노로 표현하며 범죄로 모든 걸 해소하려 한다. 


머리위에서 어미 비둘기가 잡아온 먹이를 먹으며 자라나는 어린비둘기들은 그 어미처럼 비둘기가 사는 방법으로 똑같이 살 것이다. 그들에겐 이탈과 일탈도 없이 자연이 설계한 방식대로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하려할 것이다. 계층도 없고 차별도 없이 이곳저곳 날아다니며 천적을 피해다니고 좋은 먹잇감을 찾아다니면서 자연의 품에서 노닐다 그렇게 어미처럼 자손을 번식하곤 조용히 사라져갈 것이다. 아무 이유없이 살생을 하는 인간보다, 누군가와 항상 달라야 한다는 차별의식과, 누군가를 경계해야만 하는 그런 피곤한 삶을 사는 인간보다는 더 행복할지 모른다.


우리 인간은 자꾸만 우리 스스로를 해꼬질해야할 악한 아이들을 길러내는데 힘을 쓰는게 아닌지 의문이 든다. 결국 풍요로워지거나 악해지거나를 원하는 물질만능주의 시대다. 서구문명이 만들어 논 이 어마어마한 비인간적 새장속에서 부정적인 시각을 억지로 길러내야 한다는 비극적인 양상들이 널린다. 소수의 가치관에 따라 대다수의 계층이 움직이는 불완전한 삶의 방향들, 정말 행복은 소수의 깃발인가 아니면 다수의 착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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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사진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중반까지의 흑백사진속에 내가 있었다. 머나먼 과거시제로부터 지금까지 그 간격은 멀어진다. 현재는 과거를 밀어낸다. 70년대 후반엔 갑자기 컬러사진속에 내가 등장한다. 아득한 흑백에서 조금씩 보여지는 컬러의 내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내가 그 과거의 나를 알아차린다는 것이 놀랍다. 동일성이란 것이 기억에서만 살아나고, 기억은 과거의 사진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어리고 젊은 때를 남긴다는 것이 슬픈 일이 되버린다. 과거는 언제나 젊음이 넘쳐흐른다. 오늘이 무서운 건 오늘은 순식간에 어제가 되고 과거로 변질되는 속성이 있어서다. 오늘은 나이가 먹어 늙어보인다. 내일은 모르니 그런다해도 오늘은 거울앞에서 당장 나를 확인할 수 있기에 두렵다. 나를 확인할 수 있다는 그 오늘이 눈뜬 채 계속 흘러가고 지나쳐 가고만 있다. 흑백사진의 나는 원색이 없이 검은 색과 하얀색의 명암으로 남아 아주 더디게 그 기억들을 오늘 꺼집어내길 원한다. 늘 나와 우린 오늘 속에서, 이 순간 속에서 나를 느끼고 어루만질 수 있다. 과거와 내일이란 미래는 아무런 형태와 느낌없이 삐뚤어지고 휘어진 기억과 기대만 있을 뿐이다. 흑백이든 컬러든 지난 시간을 담은 사진처럼 이미 흘러간 과거는 돌이킬 수 없기에 가슴이 답답하고 슬픔이 울컥한다. 지나고나서야 악연인 사람도 사진엔 여전히 남아 기억을 괴롭힌다. 되돌릴 수 없는 그 모든 아픔과 쓰라림들이 유독 움직이지 않는 사진 속에서 분수처럼 솟는다. 사라진 이들과 늙어간 이들이 그 속에선 한없이 젊어 밉기만하다. 그래도 과거는 기억으로 남는다. 아무도 이 사진을 사진속 주인공 이외엔 설명할 수 없다. 그 감정과 느낌이 생생하게 살아나 오늘 다시 느낀다. 과거의 그것들이 오늘 다시 새롭기도 하고, 지난 일이기에 나름대로 추억에 잠기며 감정을 어루만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때 감정이 아닌 오늘 이 감정으로 사진을 보게된다. 기쁨이었을까 아니면 슬픈이었을까라고 되묻기도 전에 아주 담담한 마음이 되어 사진만 보게된다. 지나간 일은 흑백사진이 되는 법이다. 기억은 컬러사진이 아니었다. 추억은 마냥 흑백사진으로 남아 색이 바래고 남루해지는 시간의 단편들이다. 누더기가 될 즈음 사진속 주인공들만 남고 사라지게 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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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50분 남서풍이 불어온다. 한낮의 열기 한밤의 열대야를 밀어내곤 제법 서늘한 바람이 창가를 지나쳐 동쪽으로 내빼고만 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날아갔으면 좋겠다. 바람이 멈추지 않는 저 먼 바람의 소용돌이 속으로 달려가면 항상 나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살갗으로 머리카락으로 귓가로 전율하며 살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막힌 공간으로 돌아온 나에게 피부를 질식시키는 열기와 습기가 끈적끈적한 땀방울과 섞인 불쾌함은 진한 고독과 함께 끝없이 솟아난다. 동트기 전 검은 채색을 머금은 회색구름떼가 바람에 꽁무니를 돛삼아 하염없이 지나쳐가기만 한다. 욕지거리를 주절대는 낯익은 목소리의 주정뱅이는 술과의 전쟁에서 늘 패자로 돌아오는 새벽시간에 맞춰 다리를 휘청이며 인적이 뜸한 길을 오늘도 걷고있다.

 

하루가 멀다한 것처럼 두드려 부수고 싸움질하던 앞집 남녀가 며칠전 이사를 했다. 부부인지 동거인인지 모르겠지만 야하게 옷을 입고 다니던 여성은 적어도 40을 바라보는 얼굴이지만 옷만은 20대보다 더 원색적이고 노출이 많은 것을 선호했다, 그런 것들로 인해 매일 싸움질한지는 모르겠지만 부끄러운줄은 아는지 조용히 사라졌다. 젊어보이려 애써 노력하던 여성이 "쪽 팔려 죽겠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말이다.

 

풍을 맞아 반신불수가 된 50 중반의 사내는 얼굴 근육의 부자연스러움도 아랑곳하지 않고 늘 인사를 하고 다닌다. 이혼을 했는지 아니면 처자식이 도망갔는지 모르겠지만 식사는 혼자서 하고 술친구만 따라다닌다. 그렇지만 그가 곁을 지날때면 깨끗이 씻은듯한 인삼비누냄새와 스킨로션냄새가 진동을 한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자기 몸을 관리 못해 악취가 나는지도 모르거나 꾸밀 기력이 없을때 이미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이른 봄 60초반의 사내는 오른쪽 무릎관절 수술을 했다. 인공관절을 심는 수술 말이다. 그리고 오는 가을엔 왼쪽 다리 관절도 수술해야 한다고 한다. 그를 볼때면 얼굴에 패인 깊은 주름과 어두운 그늘을 느낀다. 기막힌 사연들이 녹아든 얼굴에서 운명을 읽어내기란 괴로운 일이다. 묵묵히 담배꽁초를 줍고, 주변을 정리하면서 아마도 자신의 과거를 줍는 것 같다. 이 양반도 혼자인 듯, 가끔 의자에 벤치에 앉아 하늘을 멍하게 쳐다보며 담배를 깊게 흡입하곤 한숨으로 내뱉는 모습을 몇번인가 봤다. 고생한 과거는 고스란히 무릎에 병으로 온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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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물어보고 싶어!

과연 지금 내 가는 길의 종착역은 어디냐고

그런데 앞날은 그냥 보이는 곳으로 가기만 한다

내가 상상하는 그 어떤 것도 무섭다 못해 너무도 끔찍하다

 

아침이면 눈을 뜨고 다시 눈을 감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낮과 밤을 오고가며 무기력한 삶을 간신히 끌고는 가지만

세상은 자기가 가진만큼 잘도 돌아간다

 

힘겨운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상업화되지 못한 글쟁이는 늘 고독하다

누가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시간은 밤과 낮으로 엄연히 흘러가기만 한다

아무도 내 시간을 멈출 수 없고 어느 누구도 너의 시간을 빼앗을 수 없다

 

과거를 되새김질 하며 지금 이 모습을 상상조차 했겠는가 말이다

그렇게 인생은 갈 것이다 있건 없건 어떻게든 누리고 갈 것이지만

이미 행복과 불행의 조건은 너무도 명확하게 구분지어 논 인간사 가치관이라

그 흐름을 맞추지 못하고 낙오되면 어디로 흘러갈지 도통 모르게 된다

 

후회하지 말지어다 언제나 삶은 공평하거나 뜻대로 되질 않는다는 것

나를 기억하는 이들도 결국엔 그네들도 기억할 수 없는 곳으로 영원히 사라지는거다

내가 남겨논 혈육과 내 가족들 그리고 관련된 사람들은 한 순간 나를 기억은 하겠지

그리고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러 또 다른 세대들이 지나간 사람들을 잊고 살아간다

 

그런게 지금까지 우리가 말하는 인생유전이라는 것이다

남과는 다른 감정과 생활을 한다고 생각은 하겠지만 과거 누구나 그렇게 그런 패턴으로 살다갔다

나는 독보적이고 창조적인 존재는 아니리라 내 의식이 그런 것처럼 느끼게 하는 일이지

사실 우리 모두는 부담스러운 실존들이다 그 관계속에서 부담없인 살아가기 힘들다

인생은 여전히 끊임없이 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부담을 줘야하는 관계들이다

 

그런 부담들을 그래도 묵묵히 들어준다고 믿는 정신활동이 바로 종교적인 신앙생활이다

온갖 감정들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현대에서 종교가 번창하는 이유다 적어도 한국에선 말이다

 

인생은 누가 듣던 말던 휑한 무대위에서 알 수 없는 독백을 하는 일이다 그런 삶이다

굵직한 삶의 패턴은 같지만 세세한 부분을 따져보면 자신의 인생은 남과는 구별되기에 그렇다

나보다 잘 사는 것 같은 비교대상들에게 나는 한없이 바보같고 후회스런 인생이라 자학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과연 노력은 해보고는 그러는가 말이다

 

물질적인 것을 못해줘서 답답하다는 혹자들은 아니 대부분들은 죽을때까지 즐겁게 살긴 글렀다

사회는 역시 그것에 큰 가치를 두고 평가하고 있다

틀렸다 말해도 사람들의 9할은 그걸 큰 가치로 믿고 살아간다

그 비인간적인 잣대를 이용해 대중을 기만하고 노예로 부려먹는 것이 또한 정치 아니던가

 

처자식이 있으니까, 부모형제가 있으니까 안정은 우선이 될 것이다

건전한 가치와 상식이 물질주의 앞에 맥없이 무너지고 우리를 농락한다 하더라도

그 부패와 비인간적인 행태들이 관행으로 또는 대다수가 묵인해주는 그런 사회는

당대를 빌어먹으며 미래를 황폐화시키는 일이다

 

건전성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국가사회는 오래 지속된다

기득권을 압박하지 못하고, 기득권이 정신차리지 못하면

마침내 국가는 기득권의 부패와 죄폭악으로 멸망하게 된다

혹자는 그것조차 왜 염려하냐고 되묻는다

 

"당신이 죽으면 그 뿐이고, 그 다음은 다음세대가 맡아 할 일"이라고 말이다

 

맞다 맞는 말인 것 같다 분노한다고 해서 세상이 고쳐지는 게 아니다

썩을대로 썩고 터지기 직전까지 가야 사람은 반성하고 세상은 폭발할 것이다

 

혹자는 또 다시 말한다

"세상이 풍요롭고 넉넉해서 저항은 더 이상 힘들 것" 이라고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다 오로지 나만 안정되게 그리고 편하게 살면된다

 

그런데 과연 우리선조들도 그렇게 살았기에 이런 모습을 남겨줬을까?

왜 한글은 만들었고 이런 문화를 만들어 서로 동질성을 느끼게끔 만들었을까?

곰곰히 생각해야할 문제다

 

우리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단지 돈만 벌면서 모든 것에 무관심해야 정상적인 것인가 하는 것들 말이다

 

누구는 도를 닦는다고 지적유희, 언어유희를 넘어 스스로 말장난에 빠져있더라

현실은 외면한 채 현실에 매이는 일을 비난한다 현실적인 문제를 다 벗어던지라고 말한다

정작 자신은 물려받은 재산으로 풍요롭게 살면서 걱정꺼리 없으니 그런 말들을 쉽게 내 뱉는다

 

무슨 도인인가? 무슨 도반인가? 배부른 자들의 사치일 뿐이지

그래서 인간사 인간세상은 아직 멀었다

귀한 것을 불평등에서 찾고, 능력을 대물림에서 자찬한다

배부른 대중이란 돼지들은 적당히 먹을 것만 던져주면 알아서 기득권을 지켜준다

 

우리나라의 도반들은 죄다 사이비며 사교같은 정신상태를 가졌다

남을 돌보지 않고 자신만 돌보며 세상을 독선적인 잣대로 재단하는 덜떨어진 존재들이다

반성하라 돈독 오른 장사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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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해가 저물고, 서편엔 7월 노을이 선분홍 옷으로 갈아 입으려 한다. 46번째 7월 9일이다.


아직 유년시절 기억을 끊임없이 꺼내어 보는 나에게 어느덧 연륜은 주름을 여기저기 깊게 들쑤시고 다닌다

탄력을 잃어가는 피부를 만지작거리며 늙어가는 일이, 자식들을 쳐다보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늙고 병들어 죽어가야만 자식들과 후손들이 그 거름을 바탕으로 건강하게 살아갈테니까 말이다.


사는 것은 죽은 것을 바탕으로 살고, 죽은 것은 사는 것을 위해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겠지

사람이 도덕적으로 살려는 이유는 종족번식과 번영에 기초한 태고적 생존본능에 의한 것이다.

당대의 내 자신이 폭력과 야만으로 점철되면, 미래의 후손도 그 길을 걷게되고, 생존이 불확실할 수 밖에 없기에 말이다


본을 보이고, 모범을 보이는 이유는 가식과 형식이 아닌 생존을 위한 커다란 계획하에 만들어진 것이지, 결코 꾸며진 것이 아니다

한나라의 민족이 정체성을 유지하고 지키려는 이유는 다른 인종과 민족의 침략으로 부터 생존을 위해 결집을 유도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인류가 진화하며 평화를 추구한다는 거짓으로부터 우린 깨어나야 한다. 깨달음은 조작과 본성을 적나라하게 꺼집어내는 일이다.


야만과 폭력은 인류의 본질이며, 평화와 사랑은 인류의 가식이다. 평화와 사랑은 역사적으로 늘 야만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이었고

결국엔 그 야만성과 폭력성이 인류를 지배해왔다, 주기적이고 철저하게 인류는 살육과 파괴를 반복해 온 역사가 아니던가


우리는 우리를 항상 속이고 기만하며 살고있다. 이기적인 에고에 따라 세상은 평화롭고 자비로운척 하는 것이며

평화와 번영은 언제나 소수의 사치이자 소유물이다. 그런 구조는 여전히 반복되고 파괴되어진다. 소수의 역사는 파괴공식하에 있다.


다만 우린 우리가 누리는 당대를 지키기위해 온갖 비열과 비겁을 미덕으로 삼고 살아간다.

우리의 미래는 후손이 지켜주지 않으며, 오로지 우리가 후손을 위해 만들어주는 고단한 작업일 뿐이다.

우리 모두는 직무유기와 도덕성 결핍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의 위치, 명예, 그리고 부는 영원하지 않다.

다만 오래 지속하기 위해 소수는 다수를 위해 희생하고 관용하는 지혜를 터득하던 역사였다.


이젠 그것도 대한민국에선 기대할 수가 없다. 아름다운 이미지 속에 추악한 것들이 숨겨져 있고, 추악한 것들은

오늘도 아름다운 것으로 치장하고 왜곡하기에 혈안이다.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일이 아닌

추악한 것이 아름다움을 가장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더럽고 추악한 그런 사회 말이다. 


이런 국가사회는 소수가 모든 정체성을 파괴하는 일에 몰두한다. 추한 것을 감추는 일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 말이다

지성은 눈을 감고, 주머니가 두둑한 것엔 또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권력에 알아서 기고, 돈에 양심을 팔아먹고, 부패를 감싸주며

사소한 가쉽꺼리에만 입에 거품을 물고 정의니 나발이니 떠들어댄다. 그리곤 정의로운 지식인이고 지성인 것처럼 행세한다


상업화된 지식인, 지식을 자본주의 이념에 팔아먹은 지식인만 살아남는다. 그러니 팝퓰러한 지식인들이 메스미디어에서 인기와 돈을 벌어댄다

불의에 침묵하고, 조작과 왜곡을 더욱 심화시키는 일에 가담한다. 평화로운 듯, 사랑스러운 듯 한 사회는 폭력성을 잠재한 위험한 사회다


여전히 인간사회는 다수의 분노에 의해 역사는 바뀐다. 소수는 다수의 하찮은 '분노'를 대수롭게 생각치 말라! 



















그게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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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고싶지만 부르면 안된다 내꺼라고 주장할 아무 인연이 없기에 말이다 차라리 비열한 인간이라면 비열하게 할 것이지만 도저히 그런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닌듯 하다 그래 나를 접고 주변을 깨끗하게 해야한다 집착은 악연을 낳는다 악연은 관계를 내 기준에 맞추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 어쩌면 그게 인간의 본질인지 모른다만은 되뇌이어도 안된다  나쁜 족속이란 족보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 듯하다 착한 듯한 바보들은 악한 세상의 구도속에선 처절하게 사는 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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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득한 슬픔의 바다를 보라구

끝이 보이지 않는 검푸른 바다위를 돛단배처럼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면서도 애써 잊으려 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밑을 두려워하는거야

강렬한 태양을 향해 노를 젓는다 해도 바다를 벗어날 순 없어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우린 세상이라 하고

내가 즐거운 것을 위해 무엇이든 하면서도

뒤에서 따라오는 어둠과 바다 아래 언젠가 가라앉을 시간을 두려워하지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날리고 살갗에 생의 느낌을 불어주는 이 순간들

여름엔 시원하게 겨울엔 매서운 추위를 안겨주어도 살아있음을 알려주지

햇빛에 산란해선 찬란한 파도로 빛나는 저 아름다운 것들을 항해하면서

앞을 향해 무작정 가지만 뱃머리를 돌릴 순 없는 법

삶은 뒤로 되돌리지 못하는 작은 돛단배일 뿐이니까

이 항해가 어디까지인지를 알 수 없는 나란 작은 배의 키를 잡았지만

뱃길을 어디로 향하든 이미 누군가 지나간 낯익은 뱃길들이야

망망대해의 바다엔 어느 누구도 처음이 없더라

바닷길엔 이미 지나간 누군가의 흔적들이 늙은 노인의 주름이 되었다

그 주름살을 흘러간 뱃길은 아마도 눈물의 바다였으리라

눈물이 흘러간 먼 과거의 눈물바다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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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무엇을 기다려 설레임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그 시간이 지나면 돌아오는 것은 새로운 무엇이 없다는 것과 누구에게 말을 건넬 수 없는 현실이 한편으론 외롭고 쓸쓸한 공간과 시간이 내 안에서 내 스스로 소모해야 한다는 운명적인 존재이기도 하고 바깥에서 내가 아닌 누구의 시공에 참여한다고 해도 궁극적으로 나로부터 출발해 나에게서 끝맺음을 해야하는 삶을 깨달아도 아무런 대안도 대책도 없이 요동치는 파동 그 미세한 소립미자가 육체와 두뇌를 구성해서 사유할 줄 아는 인간족속들의 헛된 존재의 현상들에 넋을 놓고 바라보아야 하지만 큰 몸뚱아리란 게 무수한 세포들이 모여 형태만 구성하고 있을 뿐 기원을 알 수 없는 고독의 이면엔 보이지 않는 작은 세계가 육체를 지배하여 여러 생물로 만들어지고 집합체로 살다 다시 미세한 먼지처럼 흩날리는 입자로 환원되는 아쉬움의 발로이거니와 부서진 형태를 재구성하기까지 무한 공간을 헤매이고 영겁의 시간을 감내해야 전혀 새로운 모양으로 모듈화된 기적같은 결합이 이루어지면 어떤 구성체가 되어도 지나온 공간과 시간 그리고 존재의 의식은 공허와 무지로 완전히 다른 구조물이 된 채 혼란스런 결합체의 일부가 되어선 미세한 파동에 작동하는 하나의 부품 그것도 재활용된 자기세포파괴의 임무에만 충실한 무의식의 파편화된 기억만 불규칙하게 발산하는 일만 반복하게 되고 상대를 파괴하려는 본능적 쾌감들이 서로가 서로를 파괴하려는 것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자 파동을 더욱 요동치게 해서 구조물의 견고함을 다지기 위한 약육강식 정도의 수단이 되지만 이미 조합된 육화가 지닌 불완정성에 의한 붕괴 아니면 죽음으로 향하는 해체 과정에 대한 공포로부터의 해방은 흩어지는 순간 주파수 몬양 기억의 편린으로 흩어지면 또 반복과정을 거쳐 그런 세포기억이라 할 조각난 기억파편이 무의식에 관여하여 존재의 해체에 관한 즉 해체가 이루어진 원인이 구성체에게 있음을 알고있다는 것 나에게서 나를 이탈하게 한 그 모든 나에게 이미 거쳐간 나란 거대한 집합체를 향한 온갖 감정들의 덧없음이며 모르는 듯 아는 듯 가까운 곳에서 먼 곳까지 숫자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구조물들이 온통 나에게서 분리된 것이라 말 할 수도 있거니와 나로부터 분리된 나들이 빅뱅의 특이점 그 하나에서 비롯되었다는 오묘한 하나라는 힘겨운 깨달음이 있다해도 여전히 나는 나를 괴롭히고 나는 나를 구분해선 분열된 나를 향해 남이라는 타자화에 익숙하게 되니 그 연유가 단어와 개념의 불일치와 더불어 하나라는 의식을 방해하여 자꾸만 구분할려고만 하는 언어의 덫에 빠져들기에 나는 타자가 되고 타자가 된 나는 여전히 타자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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