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50분 남서풍이 불어온다. 한낮의 열기 한밤의 열대야를 밀어내곤 제법 서늘한 바람이 창가를 지나쳐 동쪽으로 내빼고만 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날아갔으면 좋겠다. 바람이 멈추지 않는 저 먼 바람의 소용돌이 속으로 달려가면 항상 나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살갗으로 머리카락으로 귓가로 전율하며 살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막힌 공간으로 돌아온 나에게 피부를 질식시키는 열기와 습기가 끈적끈적한 땀방울과 섞인 불쾌함은 진한 고독과 함께 끝없이 솟아난다. 동트기 전 검은 채색을 머금은 회색구름떼가 바람에 꽁무니를 돛삼아 하염없이 지나쳐가기만 한다. 욕지거리를 주절대는 낯익은 목소리의 주정뱅이는 술과의 전쟁에서 늘 패자로 돌아오는 새벽시간에 맞춰 다리를 휘청이며 인적이 뜸한 길을 오늘도 걷고있다.
하루가 멀다한 것처럼 두드려 부수고 싸움질하던 앞집 남녀가 며칠전 이사를 했다. 부부인지 동거인인지 모르겠지만 야하게 옷을 입고 다니던 여성은 적어도 40을 바라보는 얼굴이지만 옷만은 20대보다 더 원색적이고 노출이 많은 것을 선호했다, 그런 것들로 인해 매일 싸움질한지는 모르겠지만 부끄러운줄은 아는지 조용히 사라졌다. 젊어보이려 애써 노력하던 여성이 "쪽 팔려 죽겠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말이다.
풍을 맞아 반신불수가 된 50 중반의 사내는 얼굴 근육의 부자연스러움도 아랑곳하지 않고 늘 인사를 하고 다닌다. 이혼을 했는지 아니면 처자식이 도망갔는지 모르겠지만 식사는 혼자서 하고 술친구만 따라다닌다. 그렇지만 그가 곁을 지날때면 깨끗이 씻은듯한 인삼비누냄새와 스킨로션냄새가 진동을 한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자기 몸을 관리 못해 악취가 나는지도 모르거나 꾸밀 기력이 없을때 이미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이른 봄 60초반의 사내는 오른쪽 무릎관절 수술을 했다. 인공관절을 심는 수술 말이다. 그리고 오는 가을엔 왼쪽 다리 관절도 수술해야 한다고 한다. 그를 볼때면 얼굴에 패인 깊은 주름과 어두운 그늘을 느낀다. 기막힌 사연들이 녹아든 얼굴에서 운명을 읽어내기란 괴로운 일이다. 묵묵히 담배꽁초를 줍고, 주변을 정리하면서 아마도 자신의 과거를 줍는 것 같다. 이 양반도 혼자인 듯, 가끔 의자에 벤치에 앉아 하늘을 멍하게 쳐다보며 담배를 깊게 흡입하곤 한숨으로 내뱉는 모습을 몇번인가 봤다. 고생한 과거는 고스란히 무릎에 병으로 온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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