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해가 저물고, 서편엔 7월 노을이 선분홍 옷으로 갈아 입으려 한다. 46번째 7월 9일이다.
아직 유년시절 기억을 끊임없이 꺼내어 보는 나에게 어느덧 연륜은 주름을 여기저기 깊게 들쑤시고 다닌다
탄력을 잃어가는 피부를 만지작거리며 늙어가는 일이, 자식들을 쳐다보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늙고 병들어 죽어가야만 자식들과 후손들이 그 거름을 바탕으로 건강하게 살아갈테니까 말이다.
사는 것은 죽은 것을 바탕으로 살고, 죽은 것은 사는 것을 위해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겠지
사람이 도덕적으로 살려는 이유는 종족번식과 번영에 기초한 태고적 생존본능에 의한 것이다.
당대의 내 자신이 폭력과 야만으로 점철되면, 미래의 후손도 그 길을 걷게되고, 생존이 불확실할 수 밖에 없기에 말이다
본을 보이고, 모범을 보이는 이유는 가식과 형식이 아닌 생존을 위한 커다란 계획하에 만들어진 것이지, 결코 꾸며진 것이 아니다
한나라의 민족이 정체성을 유지하고 지키려는 이유는 다른 인종과 민족의 침략으로 부터 생존을 위해 결집을 유도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인류가 진화하며 평화를 추구한다는 거짓으로부터 우린 깨어나야 한다. 깨달음은 조작과 본성을 적나라하게 꺼집어내는 일이다.
야만과 폭력은 인류의 본질이며, 평화와 사랑은 인류의 가식이다. 평화와 사랑은 역사적으로 늘 야만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이었고
결국엔 그 야만성과 폭력성이 인류를 지배해왔다, 주기적이고 철저하게 인류는 살육과 파괴를 반복해 온 역사가 아니던가
우리는 우리를 항상 속이고 기만하며 살고있다. 이기적인 에고에 따라 세상은 평화롭고 자비로운척 하는 것이며
평화와 번영은 언제나 소수의 사치이자 소유물이다. 그런 구조는 여전히 반복되고 파괴되어진다. 소수의 역사는 파괴공식하에 있다.
다만 우린 우리가 누리는 당대를 지키기위해 온갖 비열과 비겁을 미덕으로 삼고 살아간다.
우리의 미래는 후손이 지켜주지 않으며, 오로지 우리가 후손을 위해 만들어주는 고단한 작업일 뿐이다.
우리 모두는 직무유기와 도덕성 결핍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의 위치, 명예, 그리고 부는 영원하지 않다.
다만 오래 지속하기 위해 소수는 다수를 위해 희생하고 관용하는 지혜를 터득하던 역사였다.
이젠 그것도 대한민국에선 기대할 수가 없다. 아름다운 이미지 속에 추악한 것들이 숨겨져 있고, 추악한 것들은
오늘도 아름다운 것으로 치장하고 왜곡하기에 혈안이다.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일이 아닌
추악한 것이 아름다움을 가장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더럽고 추악한 그런 사회 말이다.
이런 국가사회는 소수가 모든 정체성을 파괴하는 일에 몰두한다. 추한 것을 감추는 일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 말이다
지성은 눈을 감고, 주머니가 두둑한 것엔 또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권력에 알아서 기고, 돈에 양심을 팔아먹고, 부패를 감싸주며
사소한 가쉽꺼리에만 입에 거품을 물고 정의니 나발이니 떠들어댄다. 그리곤 정의로운 지식인이고 지성인 것처럼 행세한다
상업화된 지식인, 지식을 자본주의 이념에 팔아먹은 지식인만 살아남는다. 그러니 팝퓰러한 지식인들이 메스미디어에서 인기와 돈을 벌어댄다
불의에 침묵하고, 조작과 왜곡을 더욱 심화시키는 일에 가담한다. 평화로운 듯, 사랑스러운 듯 한 사회는 폭력성을 잠재한 위험한 사회다
여전히 인간사회는 다수의 분노에 의해 역사는 바뀐다. 소수는 다수의 하찮은 '분노'를 대수롭게 생각치 말라!
그게 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