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잃고, 사라지며,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기억하는 것보다 더 많아지면 늙어가는 일이겠지. 사랑하는 것과 소중한 것과 지켜야할 것들을 놓아둔 채 갈수록 그 농도가 얕아진다면, 그건 무기력과 무능력에서 오는 절망일 수 있을꺼야...
거울에 나타난 지금 이 모습의 나를 보면서 좀 더 아픔과 슬픔이 적었던 그 시절 파란 하늘아래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싶은 애절함도 이젠 가장 현실적인 현재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억눌린 채 기분만 자꾸 가라 앉는다. 멀리 지나간 그 공기와 사람들과 풍경들을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어쩌면 태어났기에 반드시 죽는다는 테제를 겸허히 받아들여서 사는 동안이라도 정의를 위한답시고, 학창시절 순수한 학자적 양심만 고집하며, 뭔가 휴머니즘에 가까이 가려는 그 문학적 노력들이 자본주의적 가치를 애써 무시한 듯 하다. 달려오다보니 상처투성이인 맨발만 남았더라
관련없는 모르는 이들의 생사를 모르듯이. 가고오는 것을 모르듯이 안다해도 금방 잊는 일이 바로 사람사는 세상이였지. 내가 가고 너도 가고 모두 가면서 산 사람들은 다시 웃음을 만들기 위해 슬픔을 잊고, 아픔을 딛고 살아간다.
여자여서 슬픈 운명이지만, 남자여서도 슬픈 운명이다. 짝을 찾는 일이 중요하지만 생식을 위한 짝과 이해해주는 짝이 다르다는 것을 뒤늦게 안다해도 포기하고 살던지, 헤어지던지 그 두 가지 선택받에 없다. 그러니 생식 끝난 남녀가 방황하며 계속 생식하는 행위만 하다 인생을 다 소비하는 것일게다.
적막한 밤, 잠을 자야하는 이들과 잠을 못자는 이들이 있을 터, 밤엔 조용해야 한다는 본능이 있더이다. 저 아프리카의 밤하늘, 유럽의 밤하늘, 아메리카의 밤하늘, 남극의 밤하늘 그 밤들도 별을 따라 다닐 것이다. 달도 있으면 더 좋고...
육체는 노화되면서 과거를 불사르는 일을 두뇌에 맡긴다. 소는 여물을 되새김질 하지만 사람은 기억을 되새김질 한다. 그래서인지 사람은 유독 소의 되새김질에 넋을 잃고 바라본다. 사람과 소는 길이 다르지만 같은 운명을 지닌다.
자유로운 사유 속에서 세태를 바라보고 갈길을 곰곰히 생각한다. 정신적인 여유는 물질을 비교하지 않을때 생겨난다. 그러나 흔들린다. 책임감때문일 것이다.
그래 사람은 정치적인 동물이자, 사회적 동물이라 했던가. 관념의 바다에선 허우적거리지만, 물질의 바다에 빠지면 익사하는 법이다. 그래서인지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자는 물질의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여유를 누린다. 비록 뇌가 비어있어도 말이다.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발상지인 영국의 조용한 시골 마을이 자세히 보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을 비석 하나 달랑 표시한 채 무덤만 남기고 공산주의자의 안식처가 되었다. 그래도 자본주의를 긴장시킨 당대의 이념가는 역사에 길이 남을 이론과 텍스트는 남겼다. 세상이 변하는 것도 모르고 분진이 되고 있음이다.
그도 그렇게 잊혀지는데. 필남필녀들은 성씨를 남기고 후손들을 키우다 그들도 역시 분진이 된다. 반복되면서 사람의 굴레를 결코 벗어나지 못하면서 그리 사는 것을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며 바톤을 넘겨주게 된다. 인생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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